4편: 바이러스와의 숨바꼭질: 적응성 면역의 정교한 무기들
우리가 앞서 살펴본 세균은 몸의 틈새로 침입하여 직접 세포 외부에서 증식하거나 독소를 내뿜습니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다릅니다. 이들은 마치 트로이 목마 속 병사들처럼 세포 안으로 숨어들어, 우리 몸의 세포를 자신의 복제 공장으로 삼는 은밀하고 교활한 침입자입니다. 이러한 바이러스에 맞서 싸우기 위해 우리 면역 체계는 세균과는 완전히 다른, 훨씬 더 정교하고 특화된 방어 전략을 발전시켜왔습니다.

가장 흔한 바이러스 감염의 통로는 바로 호흡기입니다. 우리가 매일 수천 리터의 공기를 들이쉬는 폐는 표면적이 축구장만큼 넓어, 외부 물질과 끊임없이 접촉하는 가장 취약한 통로 중 하나입니다. 코털과 점액층이 1차 방어를 담당하지만, 바이러스는 이 방어선을 뚫고 폐 깊숙한 곳의 세포로 침투합니다.
바이러스가 세포에 침투하면, 그 세포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자신의 유전 물질을 주입하여 바이러스 복제 공장으로 만듭니다. 감염된 세포는 수 시간 내에 수백에서 수만 개의 새로운 바이러스를 생산하며, 결국 터져 죽으면서 수많은 바이러스 입자들을 주변으로 퍼뜨립니다. 만약 세포들이 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바이러스는 세포들에게 가장 끔찍한 악몽일 것입니다.

세포들의 화학전: 인터페론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우리 몸의 첫 번째 대응은 바로 화학전입니다. 감염된 세포들은 스스로를 희생하면서도 주변 세포들에게 '경고 신호'를 보냅니다. 이 경고 신호의 핵심은 인터페론(Interferons)이라는 특별한 사이토카인입니다. 인터페론은 주변 세포들에게 바이러스 복제를 방해하고, 단백질 생산을 일시적으로 중단하여 바이러스 확산을 늦추라고 지시합니다. 마치 마을에 침입자가 나타나자 주민들이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그고 가구를 쌓아 방어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인터페론의 조기 방출은 바이러스가 더 많은 세포를 감염시킬 시간을 버는 데 결정적입니다. 비록 인터페론만으로 감염을 완전히 제거하기는 어렵지만, 바이러스의 증식 속도를 현저히 늦춰서 적응성 면역 체계가 준비할 귀중한 시간을 벌어줍니다.

세포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창: MHC Class I
바이러스는 대부분 세포 안에 숨어 지내기 때문에, 면역 세포가 이들을 직접 찾아 공격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 몸은 놀라운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바로 모든 세포 내부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외부로 '전시'하는 '창문'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 창문이 바로 MHC Class I (주요 조직적합성 복합체 Class I) 분자입니다.
우리 몸의 모든 세포(적혈구 제외)는 이 MHC Class I 분자를 세포 표면에 가지고 있습니다. 세포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내부 단백질 조각들을 무작위로 선택하여 이 '창문'에 전시합니다. 마치 가게의 진열장에 상품을 전시하듯이 말이죠. 건강한 세포는 정상적인 '내부 이야기'를 보여주지만,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는 바이러스 단백질 조각들을 전시하게 됩니다. 이 '창문'을 통해 면역 세포들은 세포가 감염되었는지 아닌지를 '내부를 들여다보듯'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살인 전문가, 킬러 T 세포
이제 감염된 세포를 직접 제거하는 맞춤형 정밀 타격 부대가 등장할 차례입니다. 바로 킬러 T 세포(Killer T Cell)입니다. 이들은 헬퍼 T 세포의 형제 격이지만, 임무는 완전히 다릅니다. 킬러 T 세포는 세포 표면의 MHC Class I '창문'에 전시된 항원을 스캔하여, 바이러스 항원이 감지되면 해당 세포에게 '깔끔하게 자살하라'고 명령합니다.

이 '명령된 자살(Apoptosis)'은 매우 중요합니다. 감염된 세포가 무질서하게 터지면 내부의 바이러스가 주변으로 퍼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킬러 T 세포가 유도하는 자살은 바이러스 입자를 깔끔하게 세포 잔해 속에 가두어, 대식세포가 안전하게 청소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킬러 T 세포는 감염된 세포들을 하나씩 찾아내 제거하는 '연쇄 살인(Serial Killing)' 과정을 통해 바이러스 확산을 효과적으로 막습니다.

최후의 보루, 자연 살해 세포
하지만 바이러스도 바보는 아닙니다. 많은 바이러스는 감염된 세포가 MHC Class I '창문'을 만들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이 경우, 킬러 T 세포는 감염된 세포를 탐지할 수 없게 됩니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자연 살해 세포(Natural Killer Cell)입니다. 이들은 '창문을 열지 않는 수상한 세포'를 찾아내는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MHC Class I '창문'이 없거나 부족한 세포를 발견하면, 그것이 암세포든 바이러스 감염 세포든 가리지 않고 죽음을 명령합니다. 이는 우리 몸의 '최후의 보루'이자, 면역 시스템의 허점을 보완하는 천재적인 전략입니다.
이렇게 우리 몸은 바이러스라는 교활한 적에 맞서 화학전, 정교한 식별 시스템, 그리고 맞춤형 킬러 세포들을 동원하여 끊임없이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가 독감 증상으로 고통받는 동안에도, 이 치열한 전쟁은 계속되고 있으며, 이 모든 과정은 당신의 생존을 위한 면역 체계의 헌신적인 노력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면역 체계가 어떻게 지난 전투의 기억을 활용하여 미래의 위협에 더욱 강력하게 대응하는지, 그리고 '면역'이 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4편: 바이러스와의 숨바꼭질: 적응성 면역의 정교한 무기들
우리가 앞서 살펴본 세균은 몸의 틈새로 침입하여 직접 세포 외부에서 증식하거나 독소를 내뿜습니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다릅니다. 이들은 마치 트로이 목마 속 병사들처럼 세포 안으로 숨어들어, 우리 몸의 세포를 자신의 복제 공장으로 삼는 은밀하고 교활한 침입자입니다. 이러한 바이러스에 맞서 싸우기 위해 우리 면역 체계는 세균과는 완전히 다른, 훨씬 더 정교하고 특화된 방어 전략을 발전시켜왔습니다.
가장 흔한 바이러스 감염의 통로는 바로 호흡기입니다. 우리가 매일 수천 리터의 공기를 들이쉬는 폐는 표면적이 축구장만큼 넓어, 외부 물질과 끊임없이 접촉하는 가장 취약한 통로 중 하나입니다. 코털과 점액층이 1차 방어를 담당하지만, 바이러스는 이 방어선을 뚫고 폐 깊숙한 곳의 세포로 침투합니다.
바이러스가 세포에 침투하면, 그 세포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자신의 유전 물질을 주입하여 바이러스 복제 공장으로 만듭니다. 감염된 세포는 수 시간 내에 수백에서 수만 개의 새로운 바이러스를 생산하며, 결국 터져 죽으면서 수많은 바이러스 입자들을 주변으로 퍼뜨립니다. 만약 세포들이 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바이러스는 세포들에게 가장 끔찍한 악몽일 것입니다.
세포들의 화학전: 인터페론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우리 몸의 첫 번째 대응은 바로 화학전입니다. 감염된 세포들은 스스로를 희생하면서도 주변 세포들에게 '경고 신호'를 보냅니다. 이 경고 신호의 핵심은 인터페론(Interferons)이라는 특별한 사이토카인입니다. 인터페론은 주변 세포들에게 바이러스 복제를 방해하고, 단백질 생산을 일시적으로 중단하여 바이러스 확산을 늦추라고 지시합니다. 마치 마을에 침입자가 나타나자 주민들이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그고 가구를 쌓아 방어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인터페론의 조기 방출은 바이러스가 더 많은 세포를 감염시킬 시간을 버는 데 결정적입니다. 비록 인터페론만으로 감염을 완전히 제거하기는 어렵지만, 바이러스의 증식 속도를 현저히 늦춰서 적응성 면역 체계가 준비할 귀중한 시간을 벌어줍니다.
세포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창: MHC Class I
바이러스는 대부분 세포 안에 숨어 지내기 때문에, 면역 세포가 이들을 직접 찾아 공격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 몸은 놀라운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바로 모든 세포 내부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외부로 '전시'하는 '창문'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 창문이 바로 MHC Class I (주요 조직적합성 복합체 Class I) 분자입니다.
우리 몸의 모든 세포(적혈구 제외)는 이 MHC Class I 분자를 세포 표면에 가지고 있습니다. 세포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내부 단백질 조각들을 무작위로 선택하여 이 '창문'에 전시합니다. 마치 가게의 진열장에 상품을 전시하듯이 말이죠. 건강한 세포는 정상적인 '내부 이야기'를 보여주지만,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는 바이러스 단백질 조각들을 전시하게 됩니다. 이 '창문'을 통해 면역 세포들은 세포가 감염되었는지 아닌지를 '내부를 들여다보듯'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제 감염된 세포를 직접 제거하는 맞춤형 정밀 타격 부대가 등장할 차례입니다. 바로 킬러 T 세포(Killer T Cell)입니다. 이들은 헬퍼 T 세포의 형제 격이지만, 임무는 완전히 다릅니다. 킬러 T 세포는 세포 표면의 MHC Class I '창문'에 전시된 항원을 스캔하여, 바이러스 항원이 감지되면 해당 세포에게 '깔끔하게 자살하라'고 명령합니다.
이 '명령된 자살(Apoptosis)'은 매우 중요합니다. 감염된 세포가 무질서하게 터지면 내부의 바이러스가 주변으로 퍼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킬러 T 세포가 유도하는 자살은 바이러스 입자를 깔끔하게 세포 잔해 속에 가두어, 대식세포가 안전하게 청소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킬러 T 세포는 감염된 세포들을 하나씩 찾아내 제거하는 '연쇄 살인(Serial Killing)' 과정을 통해 바이러스 확산을 효과적으로 막습니다.
최후의 보루, 자연 살해 세포
하지만 바이러스도 바보는 아닙니다. 많은 바이러스는 감염된 세포가 MHC Class I '창문'을 만들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이 경우, 킬러 T 세포는 감염된 세포를 탐지할 수 없게 됩니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자연 살해 세포(Natural Killer Cell)입니다. 이들은 '창문을 열지 않는 수상한 세포'를 찾아내는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MHC Class I '창문'이 없거나 부족한 세포를 발견하면, 그것이 암세포든 바이러스 감염 세포든 가리지 않고 죽음을 명령합니다. 이는 우리 몸의 '최후의 보루'이자, 면역 시스템의 허점을 보완하는 천재적인 전략입니다.
이렇게 우리 몸은 바이러스라는 교활한 적에 맞서 화학전, 정교한 식별 시스템, 그리고 맞춤형 킬러 세포들을 동원하여 끊임없이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가 독감 증상으로 고통받는 동안에도, 이 치열한 전쟁은 계속되고 있으며, 이 모든 과정은 당신의 생존을 위한 면역 체계의 헌신적인 노력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면역 체계가 어떻게 지난 전투의 기억을 활용하여 미래의 위협에 더욱 강력하게 대응하는지, 그리고 '면역'이 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